1편. 열세 번째 시간과 잠들지 않는 달
1. 세상에 없는 한 시
째깍.
유리 시계의 바늘이 숫자 13을 가리킨 순간이었습니다.
해솔의 방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창밖에서 흔들리던 나뭇가지가 멈추었습니다.
골목을 지나던 고양이도 한 발을 든 채 그대로 굳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솔이 놀라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마을 전체의 시간이 멈추었던 일을 이미 겪었기 때문입니다.
해솔은 천천히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밖의 모습은 평소와 전혀 달랐습니다.
집도,
골목도,
산도 그대로였습니다.
달라진 것은 하늘이었습니다.
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신 커다란 달 하나만 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달이 이상했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가까웠고,
무엇보다 달 한가운데에 거대한 눈 하나가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은 감기지 않았습니다.
해솔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달이… 깨어 있어.”
2. 달의 우체부가 보낸 경고
해솔은 방문 아래에서 발견한 은빛 편지를 다시 펼쳤습니다.
달의 우체부 모아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오늘 밤에는 잠들면 안 돼.’
그리고 그 아래에는 한 문장이 더 적혀 있었습니다.
‘열세 번째 시간에 잠든 사람은 아침으로 돌아오지 못해.’
해솔의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그 순간 창문 밖에서 무언가 날아왔습니다.
툭.
작은 파란 병이었습니다.
병 안에는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해솔이 뚜껑을 열었습니다.
종이가 저절로 펼쳐졌습니다.
‘해솔아.
열세 번째 시간은 원래 세상에서 사라진 시간이야.
절대로 달을 세 번 이상 올려다보지 마.’
해솔은 읽다가 멈췄습니다.
이미 달을 두 번 바라봤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3. 멈춰버린 마을을 걷는 아이들
해솔은 유리 시계를 챙겨 밖으로 나갔습니다.
골목 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해솔아!”
다온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다온의 손에는 달빛 정원에서 가져온 작은 꽃이 들려 있었습니다.
“너도 편지 받았어?”
“응.”
그때 지붕 위에서 누군가 뛰어내렸습니다.
달의 우체부 모아였습니다.
“둘 다 괜찮구나.”
해솔이 물었습니다.
“열세 번째 시간이 뭐예요?”
모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면 안 돼.”
“왜요?”
모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가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있어.”
그 순간 골목 끝에서 무언가 움직였습니다.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길쭉한 검은 형체였습니다.
얼굴도 없고,
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발소리만 들렸습니다.
또각.
또각.
또각.
모아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뛰어.”
4. 열세 번째 시간을 지키는 사람
세 사람은 시계탑으로 달렸습니다.
탑 꼭대기에 평소에는 없던 작은 문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문에는 숫자 13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해솔이 유리 시계를 가까이 가져갔습니다.
찰칵.
문이 열렸습니다.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문은 저절로 닫혔습니다.
문 너머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긴 복도.
양쪽 벽에는 수천 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각각 숫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1시 17분.
4시 32분.
7시 05분.
11시 48분.
다온이 물었습니다.
“이게 다 뭐야?”
그때 복도 끝에서 한 소녀가 걸어왔습니다.
하얀 머리카락에 검은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목에는 작은 모래시계가 걸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잊어버린 순간들이야.”
해솔이 물었습니다.
“누구세요?”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내 이름은 시우.”
잠시 뒤 덧붙였습니다.
“열세 번째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야.”
5. 하루에는 정말 열세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우는 세 사람을 작은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방 가운데에는 거대한 시계 하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숫자는 12가 아니라 13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해솔이 물었습니다.
“옛날에는 정말 하루에 열세 번째 시간이 있었어요?”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그럼 왜 없어졌어요?”
시우는 시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했거든.”
열세 번째 시간은 일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공부하는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하루가 끝난 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누군가는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누군가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천천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냥 잠시 쉬었습니다.
다온이 물었습니다.
“그런 좋은 시간이 왜 사라졌어요?”
시우가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시간마저 사용하기 시작했으니까.”
6. 쉬는 시간까지 채우기 시작한 사람들
처음에는 작은 일이었습니다.
“한 시간이나 남았으니까 이것만 끝내자.”
누군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일하면 내일 편하겠지.”
어떤 사람은 더 공부했고,
어떤 사람은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열세 번째 시간은 휴식이 아니라 또 하나의 하루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더 피곤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멈추지 못했습니다.
결국 달이 열세 번째 시간을 숨겨버렸습니다.
“달이요?”
해솔이 놀라 물었습니다.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그 이후 사람들은 열두 시간만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열세 번째 시간은 세상과 세상 사이에 숨어버렸습니다.
7. 그런데 누군가 문을 열었습니다
해솔이 물었습니다.
“그럼 왜 지금 다시 나타난 거예요?”
시우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누군가 열세 번째 시간의 문을 열었어.”
“누가요?”
“모르겠어.”
시우는 창밖의 달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문이 열린 뒤부터 달이 잠들지 못하고 있어.”
해솔은 처음 보았던 달의 눈을 떠올렸습니다.
“달이 계속 깨어 있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밤이 끝나지 않아.”
다온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학교 안 가도 되는 거 아니야?”
아무도 웃지 않았습니다.
시우가 대답했습니다.
“아침이 오지 않는다는 뜻이야.”
다온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8. 사라지는 사람들
그때 복도에서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딩—
문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이어 다른 문도 사라졌습니다.
딩.
딩.
딩.
시우가 복도로 뛰어나갔습니다.
“벌써 시작됐어.”
해솔이 따라가며 물었습니다.
“뭐가요?”
“사람들의 시간이 지워지고 있어.”
문 하나에는 어떤 할머니가 손자의 첫걸음을 보았던 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다른 문에는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썼던 날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문에는 오래 헤어졌던 친구들이 다시 만났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문이 사라질 때마다 그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같은 장면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해솔이 외쳤습니다.
“막아야 해요!”
시우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열세 번째 시간의 중심으로 가야 해.”
“어디인데요?”
시우가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달.”
9. 잠들지 않는 달로 가는 길
달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단 하나였습니다.
사라지고 있는 순간들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계단에는 누군가 처음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에는 처음 바다를 본 아이의 기억.
세 번째에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
해솔과 다온은 기억의 계단을 하나씩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중간쯤 올라갔을 때 해솔이 멈췄습니다.
익숙한 장면 하나가 계단 안에서 보였습니다.
어린 해솔과 할아버지가 마당에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의 파란색을 되찾게 해주었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해솔이 손을 뻗었습니다.
그 순간 계단이 흔들렸습니다.
시우가 외쳤습니다.
“만지면 안 돼!”
“제 기억이에요!”
“그래도 안 돼!”
“사라질 수도 있잖아요!”
시우가 해솔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순간을 붙잡으려고 하면 앞으로 갈 수 없어.”
해솔의 손이 멈췄습니다.
10. 달 안에 있던 아이
마침내 네 사람은 달에 도착했습니다.
달 표면에는 거대한 문 하나가 있었습니다.
문을 열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수백만 개의 시계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 작은 아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 앞에는 열세 번째 시간을 움직이는 거대한 태엽이 있었습니다.
해솔이 물었습니다.
“네가 문을 열었어?”
아이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응.”
“왜?”
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웃고 있었습니다.
“엄마를 한 번만 더 만나고 싶었어.”
아이는 열세 번째 시간을 이용하면 잃어버린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나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마음이 열세 번째 시간을 붙잡아버렸고,
달은 잠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11. 기억은 돌아가는 문이 아니었습니다
해솔은 아이 옆에 앉았습니다.
“나도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어.”
아이가 해솔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럼 같이 가자.”
해솔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지금의 나는 없어질 수도 있어.”
“그래도 보고 싶잖아.”
“응.”
해솔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습니다.
“보고 싶은 것과 돌아가야 하는 건 다른 것 같아.”
아이는 사진을 꼭 쥐었습니다.
해솔이 유리 시계를 꺼냈습니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아도 기억할 수 있어.”
“기억하면 더 보고 싶어지는데?”
“그럴 수도 있지.”
해솔이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내 시간 속에 있었다는 건 없어지지 않잖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이가 거대한 태엽에서 손을 놓았습니다.
12. 달이 눈을 감았습니다
쿵—
달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열세 번째 시간의 문들이 하나씩 닫히기 시작했습니다.
사라졌던 기억들도 원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하늘에 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하나.
둘.
수천 개.
그리고 오랫동안 떠 있던 달의 눈이 천천히 감겼습니다.
시우가 말했습니다.
“달이 잠들었어.”
멀리 지평선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이 오고 있었습니다.
13. 존재하지 않는 한 시간의 선물
해솔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해솔은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베개 옆에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숫자 13이 새겨진 작은 열쇠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우가 남긴 쪽지가 있었습니다.
‘열세 번째 시간은 다시 잠들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한 문장이 더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시간이 아닌데도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해솔이 열쇠를 들어 올렸습니다.
열쇠 끝에는 작은 깃털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 순간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 속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 목소리를 찾아줘.”
해솔이 창문을 열었습니다.
마을 지붕 위로 수백 개의 투명한 깃털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나무는 흔들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풍경도 움직이고 있었지만 종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멀리 개 한 마리가 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해솔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았습니다.
입은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해솔은 손안의 열쇠를 바라보았습니다.
열쇠에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바람이 훔쳐간 목소리의 문을 여는 열쇠.’
그리고 소리 없는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 끝 –
dori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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