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별을 심는 아이와 달빛 정원
1. 하늘에서 떨어진 씨앗
별이 유난히 많은 어느 늦은 밤이었습니다.
산 아래 작은 마을에 사는 다온은 잠이 오지 않아 마당에 나와 있었습니다.
낮에 할머니와 다툰 일이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다온은 돌멩이를 발끝으로 툭 건드렸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슈우우웅—
하늘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떨어졌습니다.
별똥별이라고 생각한 다온은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소원을 빌어야지!”
그런데 소원을 생각하기도 전에,
톡!
작은 무언가가 화단에 떨어졌습니다.
다온이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흙 위에는 콩알만 한 물건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씨앗처럼 생겼지만 평범한 씨앗은 아니었습니다.
가운데에서 아주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다온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따뜻했습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심어줘.”
다온은 깜짝 놀라 씨앗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누구야?”
대답은 없었습니다.
잠시 후 씨앗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침이 오기 전에….”
2. 달빛으로 키우는 식물
다온은 작은 삽을 가져왔습니다.
화단 한쪽에 구멍을 파고 씨앗을 넣었습니다.
흙을 덮고 물도 듬뿍 주었습니다.
“이제 됐지?”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온은 한참 기다렸습니다.
그때 씨앗이 다시 속삭였습니다.
“물이 아니야.”
“그럼 뭘 줘야 하는데?”
“달빛.”
다온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날은 반달이 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화단은 집의 그림자에 가려져 달빛이 닿지 않았습니다.
다온은 잠시 고민하다 창고에서 할머니가 쓰던 오래된 손거울을 가져왔습니다.
거울을 달빛 쪽으로 기울이자 은빛 빛줄기가 화단으로 향했습니다.
달빛이 흙에 닿았습니다.
그러자,
톡.
흙이 움직였습니다.
작은 싹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다온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진짜 자랐어!”
그런데 싹의 색깔이 이상했습니다.
초록색이 아니라 밤하늘처럼 짙은 남색이었습니다.
잎사귀 끝에서는 작은 별가루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3. 마음속에 숨겨둔 말
식물은 놀라운 속도로 자랐습니다.
한 뼘.
두 뼘.
어느새 다온의 무릎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성장을 멈췄습니다.
다온은 다시 달빛을 비춰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 안 자라지?”
잎사귀가 살랑거렸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 하나.”
“마음?”
“말하지 못한 마음을 들려줘.”
다온은 당황했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식물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온은 한참 동안 화단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가 다온에게 방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다온은 친구들과 놀러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괜히 짜증을 냈습니다.
“할머니는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
문을 쾅 닫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다온은 알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화가 나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요.
다온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사실… 미안했어.”
그 순간 식물에서 빛이 났습니다.
쑥!
줄기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다온은 놀랐습니다.
“설마 이것 때문에?”
잎사귀 하나가 다온의 손등을 살짝 쓰다듬었습니다.
4. 밤에만 피는 꽃
자정이 지나자 식물은 다온의 키보다 커졌습니다.
그리고 줄기 끝에서 커다란 꽃봉오리 하나가 생겼습니다.
꽃봉오리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온은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뭐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대신 꽃봉오리 표면에 작은 글자가 나타났습니다.
‘전하지 못한 말.’
다온은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아까 말했잖아. 미안하다고.”
꽃봉오리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뭘 더 말해야 하는데?”
그 순간 다온은 깨달았습니다.
자신은 꽃에게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정작 할머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온은 집 안을 바라보았습니다.
할머니 방의 불은 이미 꺼져 있었습니다.
깨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온은 종이 한 장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편지를 썼습니다.
‘할머니.
낮에는 화내서 미안해요.
사실 할머니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친구들이 기다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급했어요.
내일 아침에는 제가 먼저 방 정리할게요.
그리고….
할머니랑 같이 밥 먹고 싶어요.’
다온은 편지를 할머니 방문 앞에 놓았습니다.
그 순간 마당에서 환한 빛이 번쩍였습니다.
5. 별꽃이 피었습니다
다온이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꽃봉오리가 천천히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 장.
두 장.
꽃잎이 펼쳐질 때마다 작은 빛들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꽃이 완전히 피었습니다.
다온은 숨을 삼켰습니다.
꽃 가운데에 작은 별 하나가 떠 있었습니다.
손톱만큼 작은 별이었습니다.
하지만 빛은 아주 따뜻했습니다.
다온이 손을 가까이 가져가자 작은 별이 손바닥 위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고마워.”
처음 씨앗에서 들었던 목소리였습니다.
“너는 별이었어?”
“응.”
“그런데 왜 씨앗이 됐어?”
별이 대답했습니다.
“빛을 잃었거든.”
“별도 빛을 잃어?”
“사람들이 마음을 숨기면 우리도 조금씩 어두워져.”
다온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별은 계속 말했습니다.
“말하지 못한 고마움.”
작은 빛 하나가 피어났습니다.
“전하지 못한 미안함.”
또 하나의 빛이 생겼습니다.
“표현하지 못한 사랑.”
세 번째 빛이 생겼습니다.
“그런 마음들이 너무 오래 갇혀 있으면 밤하늘에도 어두운 자리가 생겨.”
다온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정말 별과 별 사이에는 수많은 어둠이 있었습니다.
6. 달빛 정원의 비밀
그때 구름 사이로 달빛이 내려왔습니다.
별꽃 주변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화단에서 작은 새싹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파란 꽃.
은색 꽃.
보라색 꽃.
모두 작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게 뭐야?”
별이 대답했습니다.
“달빛 정원.”
“우리 집에?”
“오늘부터는.”
다온은 신이 나서 물었습니다.
“매일 볼 수 있어?”
별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솔직하게 꺼낸 날에만 보여.”
“그럼 내일도 미안하다고 하면 되겠네?”
별이 작게 웃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 꽃은 피지 않아.”
다온은 입을 삐죽 내밀었습니다.
“생각보다 까다롭네.”
“마음은 원래 조금 까다로운 거야.”
7. 아침에 발견한 편지
다음 날 아침.
다온은 할머니의 목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다온아.”
다온은 순간 긴장했습니다.
할머니 손에는 어젯밤 자신이 쓴 편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이거 네가 썼니?”
다온은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렸습니다.
“…네.”
잠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온이 살짝 이불을 내렸습니다.
할머니가 웃고 있었습니다.
“방 정리는 같이 하자.”
“제가 한다고 썼는데요?”
“혼자 하면 오래 걸리잖아.”
할머니가 다온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대신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걸 해줄게.”
다온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진짜요?”
“그래.”
다온은 그제야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밤새 피었던 별꽃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습니다.
평범한 화단만 남아 있었습니다.
다온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화단 한가운데 작은 남색 잎사귀 하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8. 별이 부족해지는 밤
그날 밤 다온은 다시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떠 있었습니다.
어제 만났던 작은 별을 찾으려고 했지만 어떤 별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온이 중얼거렸습니다.
“잘 갔으려나?”
바로 그 순간 별 하나가 유난히 밝게 반짝였습니다.
다온은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툭.
뒤쪽 화단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온이 돌아보았습니다.
흙 위에 또 다른 씨앗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번 씨앗은 파란색이 아니었습니다.
붉은빛이 돌고 있었습니다.
다온이 씨앗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씨앗 표면에 작은 글자가 나타났습니다.
‘돌려주지 못한 고마움.’
다온은 한동안 씨앗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삽을 가져왔습니다.
“이번에는 누구의 별일까?”
달빛 아래에서 흙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하늘에서는 별 하나가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아직 지상에는 심어야 할 별이 아주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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