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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 | 마음을 담은 창작동화와 이야기 도리 | 마음을 담은 창작동화와 이야기

5.이름 없는 색을 찾아 떠난 아이와 달의 비밀 도서관

doriplus 읽는 시간 약 12분

1. 검은 씨앗에서 자라난 이상한 열매

해솔이 검은 씨앗을 화분에 심은 지 일곱 밤이 지났습니다.

첫째 날에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둘째 날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을 주어도, 달빛을 비춰도 씨앗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해솔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밤의 파란색을 되찾으면서 한 가지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무언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요.

여덟 번째 밤.

해솔이 잠들기 전 화분을 살펴보다가 눈을 크게 떴습니다.

“어?”

검은 흙 사이로 작은 싹 하나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색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파란색 같다가도 고개를 조금 움직이면 보라색으로 보였습니다.

달빛이 비치면 은색처럼 반짝였고, 그림자가 지면 처음 보는 짙은 색으로 변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색이지?”

해솔이 중얼거리는 순간 싹이 빠르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줄기가 올라오고 잎이 펼쳐졌습니다.

마침내 가지 끝에 작은 열매 하나가 열렸습니다.

열매 표면에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내 이름을 찾아줘.’

2. 이름을 붙이면 사라지는 색

다음 날 해솔은 열매를 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거 무슨 색 같아?”

첫 번째 친구가 말했습니다.

“보라색.”

순간 열매가 보라색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몇 초 뒤 다시 원래의 이상한 색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 친구가 말했습니다.

“남색 같은데?”

열매는 잠시 남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어떤 친구는 회색이라고 했고,

어떤 친구는 푸른색이라고 했습니다.

미술 선생님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은 한참 열매를 바라보더니 말했습니다.

“처음 보는 색이구나.”

“선생님도 모르세요?”

“세상에 있는 모든 색에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란다.”

해솔은 이상했습니다.

“이름이 없으면 어떻게 불러요?”

선생님이 웃었습니다.

“꼭 모든 것에 이름이 필요한 걸까?”

그 질문은 하루 종일 해솔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3. 달빛으로 적힌 초대장

그날 밤.

해솔이 열매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달빛이 창문을 지나 열매에 닿았습니다.

그러자 열매에서 작은 글자들이 떠올랐습니다.

글자들은 공중을 빙글빙글 돌다가 한 장의 문장이 되었습니다.

‘이름을 찾고 싶다면 달이 가장 낮아지는 시간에 북쪽 언덕으로 오세요.’

아래에는 작은 책 모양의 표시가 있었습니다.

해솔은 시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새벽 한 시였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메모를 남긴 뒤 밖으로 나갔습니다.

북쪽 언덕에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여기가 맞나?”

그 순간 달이 구름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달빛이 언덕의 오래된 바위를 비추었습니다.

그러자 바위 가운데에서 문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문에는 손잡이가 없었습니다.

대신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직 설명할 수 없는 것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해솔이 열매를 문 가까이에 가져갔습니다.

끼이익—

문이 천천히 열렸습니다.

4. 세상에 없는 책이 모이는 곳

문 너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책장은 하늘까지 이어져 있었고 수천 개의 사다리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들이 이상했습니다.

표지에 제목이 없었습니다.

해솔이 가장 가까운 책 한 권을 펼쳤습니다.

첫 페이지에는 그림 하나가 있었습니다.

비가 그친 뒤 처음 맡게 되는 흙냄새였습니다.

다른 책을 펼쳤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의 마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책에는 잠든 강아지의 따뜻한 배에 손을 올렸을 때 느껴지는 기분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책에도 제목이 없었습니다.

“왜 책 이름이 없지?”

“이름을 붙일 수 없으니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해솔이 돌아보았습니다.

커다란 안경을 쓴 작은 노인이 서 있었습니다.

그의 수염에는 종이 조각들이 잔뜩 붙어 있었습니다.

“누구세요?”

“나는 이곳의 사서 여운이란다.”

“여기가 어디예요?”

노인이 두 팔을 펼쳤습니다.

달의 비밀 도서관.

“무슨 책을 보관하는 곳인데요?”

여운은 웃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것들.”

5. 이름이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해솔은 주머니에서 열매를 꺼냈습니다.

“그럼 이것도 아세요?”

여운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어디서 났니?”

해솔은 밤빛 염색소에서 받은 씨앗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여운은 열매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습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이 색의 이름을 알고 계세요?”

여운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도 모른단다.”

“비밀 도서관 사서인데도요?”

“그래서 이곳에 있는 거야.”

여운은 해솔을 도서관 가장 깊숙한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아주 커다란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표지에는 단 하나의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직 세상에 없는 말.’

책을 펼치자 대부분의 페이지가 비어 있었습니다.

여운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 이름부터 붙이려고 하지.”

“이름이 있어야 편하잖아요.”

“맞아. 하지만 이름을 붙이는 순간 우리가 보지 못하게 되는 것도 있단다.”

해솔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운이 창문을 가리켰습니다.

“저걸 보렴.”

창밖에는 달이 떠 있었습니다.

“달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바라봐.”

해솔은 한참 달을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달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래 바라보니 달 가장자리의 푸른빛이 보였습니다.

그 주변에 아주 희미한 노란빛도 있었습니다.

구름이 지나갈 때마다 달빛의 모양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해솔이 중얼거렸습니다.

“이상하네요.”

“뭐가?”

“달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더 많이 보여요.”

여운이 미소 지었습니다.

“바로 그거란다.”

6. 사라지기 시작한 책들

그때였습니다.

쿵!

도서관 어딘가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습니다.

책 한 권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책이 투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여운이 다급하게 책을 들어 올렸습니다.

하지만 책은 그의 손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책들이 흔들렸습니다.

한 권.

두 권.

열 권.

제목 없는 책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왜 없어지는 거예요?”

여운이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빨리 이름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야.”

누군가의 마음을 단 한 단어로 결정하고,

처음 만난 사람을 몇 가지 모습만 보고 판단하고,

조금 다른 것을 보자마자 익숙한 것과 같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럴수록 비밀 도서관의 책도 사라졌습니다.

“이대로라면 어떻게 돼요?”

“세상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들을 발견할 기회가 줄어들겠지.”

해솔은 손에 든 열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열매의 색도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7. 이름을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

해솔은 열매를 꼭 쥐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어요?”

여운이 대답했습니다.

“네가 결정해야 해.”

“뭘요?”

“그 색에 이름을 붙이렴.”

해솔은 놀랐습니다.

“그러면 사라지는 거 아니에요?”

“대신 평범한 색이 될 거야. 누구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오래 남을 수 있지.”

“다른 방법은요?”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

여운이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아무도 이 색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어.”

해솔은 열매를 바라보았습니다.

빛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색.

보고 있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색.

해솔은 한참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름을 안 붙일래요.”

“왜?”

“모르겠어요.”

해솔이 웃었습니다.

“그런데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 순간 열매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습니다.

8. 이름 없는 색이 밤하늘에 퍼졌습니다

빛은 도서관 천장을 뚫고 밤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별과 별 사이로 퍼졌습니다.

파란색도 아니고,

보라색도 아니고,

은색도 아닌 색.

보는 방향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빛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창문을 열었습니다.

“저게 무슨 색이지?”

어떤 사람은 파란색이라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보라색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예쁜 색인데?”

그 말을 들은 순간 달의 비밀 도서관에서 사라지던 책들이 멈췄습니다.

여운이 웃었습니다.

“정답을 찾았구나.”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정답을 정하지 않은 게 네 답이었어.”

해솔은 창밖의 새로운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날 이후 그 색에는 끝내 이름이 붙지 않았습니다.

9. 마지막 책장 뒤의 작은 문

집으로 돌아가기 전 여운이 해솔을 불렀습니다.

“잠깐.”

그는 도서관 가장 오래된 책장으로 해솔을 데려갔습니다.

책장을 밀자 뒤에 아주 작은 문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문에는 열쇠구멍만 있을 뿐 손잡이가 없었습니다.

“저 안에는 뭐가 있어요?”

“나도 모른단다.”

“사서님도요?”

“이 도서관이 생기기 전부터 잠겨 있었거든.”

해솔은 열쇠구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안쪽에서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째깍.

째깍.

시계 소리였습니다.

그 순간 주머니 속에 있던 작은 붓이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붓끝에서 이름 없는 색 한 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색이 열쇠구멍에 닿았습니다.

찰칵.

문이 아주 조금 열렸습니다.

그 틈 사이로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리고 바닥으로 작은 물건 하나가 굴러 나왔습니다.

해솔이 주웠습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유리 시계였습니다.

그런데 시계에는 숫자가 없었습니다.

시곗바늘도 하나뿐이었습니다.

유리 뒷면에는 짧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만 되돌려드립니다.’

해솔이 여운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하지만 여운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 시계가 아직 남아 있었을 줄이야….”

“이걸 아세요?”

여운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열린 문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해솔아.”

“네?”

“아무래도 네가 다음에 가야 할 곳이 생긴 것 같구나.”

그 순간 유리 시계의 바늘이 처음으로 움직였습니다.

째깍.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시간이 멈추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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